한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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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목헌 작성일15-08-16 21:02 조회1,7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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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2월 2일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한벽당은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1가 산 7-3에 있는, 승암산(僧岩山) 기슭 발산(鉢山) 머리의 절벽을 깎아 터를 만들어 세운 누각이다. 1404년(태종 4)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집현전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조선 초기의 문신 최담이 그의 별장으로 지은 것이다. 누각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건평은 7.8평이다.
슬치에서 시작된 상관 계곡의 물이 의암·은석 등 크고 작은 많은 골짜기의 물과 합류하면서 만마(萬馬)·색장(色長) 등 여러 고을 옆을 거쳐 한벽당 아래로 흘러온다. 여기서 물줄기는 계곡의 바윗돌에 부딪쳐 흰 옥처럼 부서지면서 거듭 굽이틀어 남천으로 흘러간다. 옛 문인들은 이 정경이 마치 벽옥한류(碧玉寒流, 壁玉寒流) 같다고 읊었으며, 한벽청연(寒碧晴煙)이라 하여 전주 8경의 하나로 꼽았다.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이곳을 찾았으며, 그들이 제영(題詠)한 시가 많이 전해 오고 있다. 《호남읍지(湖南邑誌)》에는이경전(李慶全)·이경여(李慶與)·이기발(李起渤)·김진상(金鎭商) 등 19명의 저명한 인사들이 한벽당에서 지었다는 시문이 실려 있어 그 시절의 풍류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처음에는 여기를 최담의 호인 월당(月塘)을 따서 월당루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한벽당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벽옥한류(碧玉寒流)라는 글귀에서 한벽(寒碧)이라는 어귀를 따서 후세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아닌가 추정된다.
한벽당의 서쪽 일대는 자만동(滋滿洞) 또는 옥류동(玉流洞)이라 불리었다. 옛날에는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가롭게 노닐던 곳이었고, 남원·구례·곡성·순천·진주로 가는 나그네들이 지금의 남천교인 호화로운 오룡교(五龍橋)를 건너면서 그 아름다운 풍치를 감상하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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